Ⅰ. 서 론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대왕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자들에게 한국의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음운서를 편찬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1448년 반포된 한국 최초의 음운서가 바로 동국정운(東國正韻)이다. 동국, 즉 한국의 바른 운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어떤 이는 이 동국정운의 편찬을 두고 결국 훈민정음은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창제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음운학에 조예가 깊던 세종대왕은 당시 조선에서 쓰이던 한자음에 많은 혼란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까지 한국에서 쓰이던 한자음에 대해서는 이두나 향찰 같은 차자 표기나 지명, 인명 등의 한자 표기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동국정운 서문을 보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정도 알 수 있다. 표음문자가 없고 그렇다할 한국식 운서도 없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국정운을 편찬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외래어 표기법을 마련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자음 표준화에 대해 세운 기본 방침을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 편으로 속습을 채집하고 널리 전적을 상고하여 널리 쓰는 음을 근본으로 삼고, 고운의 반절에도 맞도록 하며, 자모 칠음 청탁 사 성등에 걸쳐 그 본말을 밝히지 않음이 없도록 해서 그 올바른 것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시었다.
즉 당시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발음도 고려하되 중국의 음운학에 따른 음운 체계도 규칙적으로 반영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라고 하는데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 초기 한글 문헌의 주음에 사용되었지만 너무 중국의 음운학 체계에 맞추려 한 나머지 당시 쓰이던 현실 한자음과는 동떨어진 표기가 되었다. 그래서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쓰이지 않게 되고 16세기부터는 현실 한자음에 따른 표기가 일반화되었다.
우리가 지역마다 다른 말들을 통일하기 위해 공통어로서 표준어를 제정하는 것처럼 문자 역시 공통적인 표기법을 정할 필요가 있다. 만약 개인에 따라서 또 집단에 따라서 다르게 표기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거나 수입될 때 통일된 표기법을 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훈민정음이 국문으로 인정된 것이 개화기였기 때문에 표기법 통일에 대한 생각도 개화기에 와서야 생겨나게 되었다. 최초로 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었고, 그후 계속해서 표기법의 변천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고 생성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들어 컴퓨터 통신이 활성화되면서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이고 효율적 전달을 고려한 새로운 표기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현행 맞춤법 표기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지만 하나의 통신 표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Ⅰ. 서 론
Ⅱ. 본 론
1. 훈민정음의 탄생과 의의
2. 한글의 창제와 사용의 역사
3. 훈민정음 표기법의 변천과정
4. 한글표기법 용어와 개념의 문제
5.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
6. 현행 한글맞춤법의 평가
7. 신세대들의 새로운 표기법
Ⅲ.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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